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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그램을 기념하며 여섯명의 아이콘 재해석자

  • 모노그램을 기념하며 여섯명의 아이콘 재해석자 - 루이 비통 문화유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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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코닉한 모노그램을 기념하기위해 여섯명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루이 비통의 초대에 응했다.

여성들 사이에서 자라난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미와 하이힐 고유의 라인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작업에 영감을 주고 있는 파리의 밤 문화, 쇼걸, 모험과도 같은 여행을 20대 초반부터 경험한 그는 1991년, 파리에 첫 매장을 오픈함으로써 열정적인 행보를 이어나갔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끊임없는 열정과 거듭된 노력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색 밑창(red sole)”은 전세계적으로 유혹의 상징이 되었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이미지 메이커이자 필름 메이커로 활약하며 여러 경계선들을 허물었다. 성격파 배우, 모델, 의상 담당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스타일리스트, 감독, 작가, 영화 촬영 기사, 포토그래퍼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역할을 자처한다. 2012년, 뉴욕 현대미술박물관(MOMA)에서 열렸던 회고전을 비롯해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열린 다수 전시에 참여한 신디 셔먼은 1995년 일명 ‘천재상(Genius Award)’으로 불리는 명망 높은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을 수상하였다. 신디 셔먼은 아마도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여성 아티스트일 것이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에 건축 사무소를 설립한 이래 프랑크 게리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전 세계 주요한 유명 건축물들을 설계하였다.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재탄생한 그의 산타모니카 자택에서부터 전설적인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동시대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평하였던 1997년 완공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Guggenheim Museum Bilbao)에 이르기까지 프랭크 게리는 건축적인 경관을 재정의해왔다. 그는 올해 말 파리 시내에 완공될 예정인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비롯한 권위 있는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오고 있다. 월간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는 프랭크 게리를 가리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건축가’라 일컬었다. 그는 미국의 인기 만화 ‘심슨(The Simpsons)’에 등장하기도 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패션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의 전문 분야에 혁신을 몰고 왔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패션을 재정의하는데 있어 아이콘을 새롭게 해석해내는 접근 방식, 특히 기성복(ready-to-wear)의 중요성을 예측하고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재조명하는 그의 탁월한 안목은 대부분의 패션 하우스에게는 청사진과도 같다. 17세의 나이로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딘 라거펠트는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을 위해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장 파투(Jean Patou), 끌로에(Chloé)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시에, 역사, 예술, 건축, 음악, 18세기 프랑스 가구에 대한 지식 또한 쌓아나가며,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취임한 1983년 이래 끊임없이 놀라운 성과를 보여왔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아이콘이자 아이콘 재해석자인 칼 라거펠트는 결코 쉬지 않는다.
마크 뉴슨(MARC NEWSON)은 산업 디자인을 독학하기 이전, 조각과 쥬얼리 디자인을 공부하였던 만큼, 이러한 경험에 힘입어 기존의 것을 재해석하는 접근법과 그만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직관적이고도 개인적인 그 자신만의 접근법으로 장르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광범위한 디자인 작업을 선보여온 뉴슨은 그가 속한 분야에서는 다소 독특한 인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 마크 뉴슨이 대학을 갓 졸업한 당시, 23세의 나이로 디자인한 록히드 라운지 체어(Lockheed Lounge chair)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디자인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학창시절, 예술과 문학을 전공하였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는 졸업 후, 커리어 방향을 빠르게 전환해 섬유회사에 취직, 독학으로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가와쿠보가 1969년에 설립해, 1973년 기업화한 그녀의 라벨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에서도 묻어난다. 가와쿠보는 그래픽과 광고는 물론, 매장 인테리어에서부터 옷과 액세서리의 디자인 및 제작에 이르기까지 각각 밀접히 연계되어있는 창의적인 전 과정에 대해 관여하였다. 1981년 그녀는 이제 전설이 된 그녀의 첫 번째 꼼 데 가르송 파리 쇼를 선보였다. 아이콘을 재해석해내는 그녀만의 미적 감각과 블랙을 향한 애착은 컬렉션 초창기에는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결국에는 미의 개념에 대한 인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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