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서 2017년 사이, 여름과 겨울을 넘나들며 네 차례의 긴 여정으로 거듭난 서울 여행을 통해 이시노리 두 사람은 평범하면서 의욕적이고 깍듯하며 성실한 이 나라 사람들은 흥이 넘치면서도 창의적인 기질이 돋보이는 한 민족의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이시노리의 일심동체 듀오, 라파엘 위르빌러와 마유미 오테로는 외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서울의 오랜 전통과 공연예술에 심취하는가 하면, 미세한 역사적 시간의 간극과 일상의 틈을 파고들면서 도시 특유의 맥박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절묘함을 보여준다. 이시노리는 서울 특유의 삶의 속도와 복작대는 거리, 축제는 물론, 일에 몰두한 상인의 모습, 명동 거리를 열정적으로 물들이는 쇼핑 인파, 아름다움에 열광하는 이를 위한 뷰티 살롱과 성형외과, 어묵, 만두, 회오리 감자, 김밥, 호떡 등 매력적인 길거리 음식과 같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을 수많은 디테일을 살려가며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K팝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장독대의 모습 또한 인상적인데, 그래서인지 고추와 채소를 넣고 절인 발효 음식인 김치의 시큼한 향은 때때로 아침 여덟 시 지하철 공기를 물들이기도 한다.
“서울은 창의적인 기운이 넘치는 유기적인 도시로, 그래픽적으로도 매우 세련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는 디자인의 우수성이나 표지 체계, 원이나 삼각형 등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의 유형화 및 기호화 작업의 상당한 수준에서도 드러난다. 간혹 다소 엉뚱한 경우도 있지만 보편화된 느낌의 미적 감각이 도심 곳곳에서 느껴진다. 서울에서는 바로크적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다. 도시 특유의 순간성과 우아함이 한데 섞여 하나의 기적이 탄생한다.”
작가 소개
이시노리는 디자이너·시각 예술가의 스튜디오이자 실크스크린 인쇄 아틀리에며, 아티스트북 및 판화집·팝업북·폴딩북을 펴내는 출판사이기 이전에, 두 머리와 네 개의 손, 그리고 스무 개의 손가락을 가진 일심동체의 뛰어난 아티스트 듀오를 일컫는다. 그렇게 둘에서 하나가 된 스페인-일본계 프랑스인 마유미 오테로(Mayumi Otero)와 프랑스인 라파엘 위르빌레(Raphaël Urwiller)는 모두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 출신으로, 둘은 캠퍼스 안에서 처음 만났다. 이시노리가 만들어진 것도 2007년 학교 벤치 위에서였다. 그때부터 작품에서나 삶에서나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은 함께 여행하고 취재하고 관찰하면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꼼꼼하게, 실로 열정적인 장인 정신에 걸맞은 세심함으로 삽화와 도안 작업을 해나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신한 시도들이 이들의 주된 작품 성향을 특징짓게 되는데, 마유미 오테로와 라파엘 위르빌레는 주위에서 자신들을 “판화 거장들의 현대적 계승자”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고야와 뒤러, 호크니, 쿠니요시 등의 위대한 화가와 판화가들, 피렌체 르네상스 미술과 중국 원생 미술의 거장들, 일본의 대중 포스터 도안가들은 물론 에페메라 인쇄물 또한 그들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언급한다. 30여 권의 책을 낸 독창적인 독립출판물 저자 이자, 이시노리 특유의 ‘실험적인 출판물’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로서 두 사람은 ‘오브제로서의 책’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간 펴낸 다수의 출판물 중 이시노리의 스타일과 창의성을 특히 잘 드러내 주는 작품으로 『한치동자(Issun Bôshi)』(Actes Sud Junior, 2014)와『그리고 그 후 (Et puis)』(Albin Michel Jeunesse, 2018), 『채석장(Carrière)』(Icinori, 2018) 세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시노리의 작품은 「르 몽드」,「텔레라마」,「레쟁록큅티블」,「뉴욕타임스」,「와이어드」,「뉴요커」, 「포브스」등에 수록되었으며,「푀이통」과「XXI」,「버라이어티」잡지 등에 게재됐다. 풍부한 감성의 두 아티스트는 런던, 볼로냐, 바르셀로나, 파리, 서울 등지에서 전시를 개최하고 있지만, 그들 자신을 제대로 노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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